real story [21. 절망의 순간 하나님을 잡다]

 

 

1999년 가을 군 제대 후 복학을 앞둔 남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뇌종양 진단을 내렸다. 남동생은 늘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숨골 쪽에 종양이 점점 커지면서 시력도 혼미해졌고 걸을 때는 균형을 잘 잡지 못했다. 온몸에 마비가 오는 ‘소뇌종양’이라고 했다. 담당 의사는 종양이 악성와 양성에 교묘하게 걸쳐 있어서 6개월에서 수년밖에 살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동생의 나이 23세였다. 어머니의 교통사고, 오빠의 대형 산재사고에 이은 동생의 청천벽력 같은 비보… 모두 거짓말 같았다. 왜 하필이면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12시간이 넘는 뇌수술을 5번이나 받은 동생은 뇌 기능이 원활하게 되지 않았다. 수분조절이 안 되어 뇌에 작은 관을 심어 뇌수액을 빼내기도 했다. 혼수상태에 빠지는가 하면 뇌수막염에 걸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한 채 눈만 껌뻑이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장시간 수술이 진행될 때마다 가족은 수술실 앞에서 마음을 졸이며 새벽을 맞이해야 했다.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한 친구가 새벽 2시경에 택시를 타고 나를 찾아왔다.

너무 감동이 되어서 왔다고 했다. 나와 가족을 위로하고 동생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당시엔 그 친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지나치게 하는 편이라는 소문을 들었기에 달갑지 않게 여겼지만, 정성을 다해 기도해 주는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나도 그동안 찾지 않았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친구의 정성에 감동이 되어, 교회에 와서 성경말씀을 배우기 시작했다. 곧이어 수료를 하게 되었다. 수료를 한 날, 동생이 1년3개월 만에 퇴원을 했다. 한방병원에 다시 입원한 동생은 병원에서 말씀을 배웠다.

 

그러다 2001년 2월 25일 전국 전체예배가 있어서 수련원에 가게 되었다.

그날이 우리 가족에게 역사적인 날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해외 선교로 인해 한 번도 뵙지 못했던 총회장 목사님을 이날 처음으로 뵙게 되었다. 나와 동생은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싶어서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주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을까?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수련원에서 총회장 목사님은 갑자기 가던 길을 돌이켜 우리 곁으로 다가오셨다. 가까이 오신 총회장 목사님은 언제 병이 생겼는지, 지금의 상태는 어떠한지를 물어보셨다. 뇌종양 수술 후유증으로 균형조절의 장애가 왔고, 재발되면 몇 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말씀드렸다. 총회장 목사님은 동생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기도해 주셨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총회장 목사님의 목소리에는 한 생명을 향한 깊은 사랑,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느껴졌다.기도를 받은 뒤, 동생의 회복은 놀랄 정도로 빨랐다. 담당의사는 수술 부위가 재발 위험 없이 깨끗해진 것은 기적이라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가족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동생은 한 달 뒤에, 어머니는 그해 겨울에, 다음 해에는 할머니가,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아버지가 수료를 했다.시력과 언어장애, 균형기능 등 장애 4급의 후유증을 겪고 있지만,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던 동생이 9년 만에 대학 졸업을 하고 인터넷 방송국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혼자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교회에서 온 가족이 함께되었다.우리 가정에 함께하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생명을 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과 그 깊은 사랑을 몸소 보여 주시는 총회장 목사님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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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story [20. 치유의 광선]

간증

2011년 2월 설 명절을 앞두고,

집에 가기 한 달 전부터 ‘올해는 꼭 주님과 함께 설날을 보내야지. 예전처럼 놀고먹기만하지 말자’라고 굳은 결심을 했다. 어머니, 여동생, 남동생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외가 식구들은 천주교 신앙을 하고 있음에도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몰랐다. 성당에도 잘 나가지 않고 있었다. 주님이 보시기 에는 길을 잃어버린 양과 같으니, 외가 식구들이 모두 주님 품으로 올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설날 다음 날 외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그날은 금요기도회가있는 날이었는데, 직접 참여할 수는 없으니 어머니, 여동생, 남동생과 집에서 찬양을 드리며 기도하기로 했다. 외할머니도 참여하셨고, 외삼촌에게도 함께 기도하자고 권유했다. 간절히 기도한대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하나님께 뜨겁게 감사기도를 드리며, 주님의 손발이 되어 뛰고 달리겠노라고 더욱 결심하는 기도를 했다.

 

다음 날이 되자, 어머니가몹시 기뻐하면서 외삼촌에게 표적이 일어나서 간증하고 싶어 한다고 하셨다.

외삼촌은 얼굴에 광채를 띠며 아주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너희들은 정말 하나님이 보낸 천사야. 어젯밤에 주님이 우리집에 오셨어. 그리고 나를 치료해 주셨단다. 내가 원래 허리와 발이 너무 아파서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리고 다녀야 했고, 손도 들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아팠거든… 병원에서도 병명을 모른다고 하니 너무 힘들었는데, 어제 주님이 고쳐 주신 거야.기도하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어떤 빛이 나를 비추는거야. 그 빛은 아주 먼 곳에서 오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그 빛을 따라가다가 거실에 있는 주님의 사진 앞에 서게 되었어. 그때 “너의 병을 고쳐 주겠노라” 하고 분명한 음성이 들렸단다. 이 음성은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울림같은 것이었어.두 손이 큰 원을 그리면서, 나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어. 그 빛을 따라 손을 높이 들 때 처음에는 아팠지만, 자연스럽게 용기가 생기면서 주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어. 그렇게 계속 찬양을 하니 통증이 사라지는 거야. 너무 신기하고 기뻐서 계속 그 동작을 반복했지.너희들과 함께 기도할 때 읽었던 기도문이 생각나서 ‘하나님과주님의 지혜는 얼마나 높은지요. 하나님은 우주를 만드시고 지구도 만드셨지만, 인간의 머리로는 작은 산 하나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 갑니다. 저를 사용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렸단다. 이렇게 기도를 드리니 더욱 기쁜 마음이 가득하게 되었고, 감사한 마음이 넘치게 되었어.

 

예전에도 말씀을 듣고 기도를 드렸지만, 아무런 효과도 감동도 없었단다. 그런데 어제 너희들과 기도를 하면서 주님께서 나의 고질병을 치유해 주셔서 이젠 다 나았단다.” 하면서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영적인 체험을 설명했다.

교회에서외삼촌과 함께 가족들도 외삼촌의 몸이 하룻저녁에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고 신기해했다. 하나님과 주님께서 이토록 분명하게 역사해 주셨으니 육신의 병뿐 아니라 근본적인 영의 병을 고쳐야 하는 뜻이있음을 깨닫고, 외삼촌에게 교회 성경말씀을 들을 것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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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도 외삼촌에게 왜 말씀을 배워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을해 주셨다. 외삼촌은 자연스럽게 말씀을 배운 뒤에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인간적인 생각을 하다 보니, 집안 어른들을 전도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주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달랐다.인간의 책임분담이 있으면, 하나님은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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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story [19. A Miracle Happened To A Family]

 

 

2000년 가을, 아버지는 아주 심한 중풍으로 몸 한쪽이 마비되었다.

병원 침대에 힘없이 누워 계신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와 우리 육남매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차례로 병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이 절망하여 우는 모습을 보면,아버지도 회복에 대한 소망을 잃으실까 봐 그럴 수밖에 없었다.당시 아버지는 80세의 나이로 중풍을 맞기 전까지는 매우 정정하셔서 집 안팎의 일을 다 하셨다.

 

아버지의 소식을 들으신 총회장 목사님은 약수를 떠서 먹이라고 하셨다.

(그 약수는 독일에서 총회장 목사님이 직접 삽으로 파서 만든 것이다. 주위에는 돌을 예쁘게 쌓아 놓으셨다. 우리 가족은 그 약수터를 보고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3일뒤, 집필중이시던 총회장 목사님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어렵게 병원을 찾아오셨다. 직접 약수를 먹여 주시며 소망을 주시는 말씀을 전하셨다. 총회장 목사님은 아버지의 몸 이곳저곳을 손수마사지해 주셨다.그러곤 손가락 운동을 하라며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숫자를세듯이 손가락 하나하나를 접었다가 펴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1000번씩 고백하는 방법이었다.아버지가 설명을 듣고 이해하자 아버지를 위해 뜨거운 기도를 해주셨다.

 

다음 날 우리 가족은 병실 문을 열고 본 아버지의 모습에 눈을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가락이 심하게 마비되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셨던 아버지가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작은 동전을 집어 내셨다. 게다가 저녁식사로 나온 버터 포장지를 직접 벗겨 내시는 게 아닌가!!아버지의 회복 소식을 들으신 총회장 목사님은 그 주 주일예배를 드리시기 전에 부모님 집을 방문하셨다. 하나님께 1000번 감사를 드렸느냐는 총회장 목사님의 물음에 아버지는 2000번 감사를 드렸노라 답변하셨다. 아버지를 바라보시던 총회장 목사님의 웃으시는 모습이 지금까지도 눈에 선하다.

 

총회장 목사님이 독일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시면서 아버지가두 번째 중풍을 맞으셨다.

낙심이 될 때, 다시 총회장 목사님께기도해 주시기를부탁드렸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신 뒤에 아버지는 다시 건강을 회복해 가셨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6남매 중 외아들인 내게는 4명의 여동생이 있다. 막내 여동생이 결혼하여 첫 아기를 가졌을 때 가족은 모두 기뻐했고, 순조로운 출산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가족들의 바람과 달리 2개월 빨리 태어난 아기는 폐 기능이 미숙하여 폐렴에 걸린 상태였다. 의사들은 아기에게 강한항생제를 투여할 수 없어, 가망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어머니는 울면서 기도했다. 아기의 생명을 위해서 총회장 목사님께도 기도를 부탁드렸다. 이때도 총회장 목사님은 아이를 위해 뜨겁게 기도해 주셨다.아기는 기적처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 아기는 건강하게 자라났다. 지금은 나이에 비해 키도 큰 편이고, 튼튼할 뿐 아니라수영에도 재능을 발휘하여 모두에게 기쁨이 되고 있다.이게 끝이 아니다. 

 

나는 1976년 12월 29일 18세의 나이로 스키를 타다가 아주 심하게 다친 적이 있다.

목뼈가 부러지면서 오랫동안 전신마비를겪었고, 10년간 물리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다행스럽게 대부분재활되어 정상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몸의 일부는 호전되지 않고 계속 불구인 상태였다. 기회가 되어 2002년 한국에 있는 수련원을 처음 방문한 날 수련원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총회장 목사님의 수고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깊이 깨닫고 있었다. 수련원에 있는 약수를 마시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순간..벼락과도 같은 강한 전류가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얼마나 놀랐는지 말도 할 수 없었다. 손이나 발에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부터 목을 타고 전신으로 전류가 흘렀다.그러면서 25년 동안 내 삶의 일부처럼 따라다니던 오른손의 마비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 후 3일간 점점 더 좋아지면서 손의 마비가 완전히 풀리게 되었다. 뜨거운 눈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총회장 목사님이 만들어 주신약수터하나님께서 내 가정에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총회장 목사님의 정성 어린 기도와 사랑에도 감사드린다. 하나님을 위해 할 수있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기도이기에 오늘도 하나님과 전 세계 수많은 교회와 사람들, 그리고 총회장 목사님을 위해 기도드린다.

 

독일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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